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령왕 금제 관식 (문단 편집) == 내용 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무령왕 금제 관식2.jpg|width=100%]]}}}|| || 무령왕 금제 관식의 장식 중 가장 화려하다고 평가받는 [[불꽃]]이 타오르는 형상 부분.[* [[http://www.chungnam.go.kr/multi/multiMedia.do?article_no=MD0000565973&med_action=view&mnu_cd=CNNMENU00014&orderby=REG_DATE|사진 출처 : 충청남도 미디어플러스 - 국보 제154호 무령왕 금제관식, 백제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다]]] || 왼쪽 관식 높이 30.7㎝, 너비 14㎝. 오른쪽 관식 높이 29.2㎝, 너비 13.6㎝. 1971년 백제 [[무령왕릉]]에서 출토된 [[무령왕]]의 금제 관식으로, 유물의 제작 연대는 6세기 경이다. 당시 왕릉에서 관 꾸미개는 모두 4점이 출토되었는데 [[왕]]과 [[왕비]]의 머리부분에서 각각 2점씩 쌍을 이룬 상태로 확인되었으며, 왕비의 것은 [[무령왕비 금제 관식]]이란 명칭으로 국보 제155호로 따로 지정되었다. 금을 두드려 만든 2㎜의 얇은 [[금|금판]]에 인동당초무늬와 불꽃무늬를 기본 문양으로 하여 정교하게 오려낸 것으로, 그 전면에는 둥근 모양의 작은 달개를 매달아 장식성을 더했다. 맨 아래에는 줄기가 있는데 아래위로 2, 3개의 작은 구멍이 있어 무엇인가에 부착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. [[중국]] [[구당서]](舊唐書)의 기록에 나오는, [[백제]]의 왕은 검은 비단관을 쓰고 작은 금꽃으로 장식하였으며, 신하들은 은꽃을 사용하였다고 하는 기록과 일치한다. 이보다 1세기 정도 앞서 만들어진 [[신라]]의 [[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|금관총 금제 관식]], [[천마총 금제 관식]] 등과 함께 [[한국]]의 고대 금제 관 꾸미개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. 특히 매우 미려하고 호사스러운 형식을 보여주는 유물로, [[무령왕비 금제 관식]]과 함께 백제의 순황금 유물 중 최고의 예술성을 갖추었다고 평가되므로, 신라의 각종 [[금관]]([[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|금관총 금관]], [[황남대총 북분 금관]], [[천마총 금관]], [[서봉총 금관]], [[금령총 금관]] 등) 및 [[황남대총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]] 등의 최고 위세품들과 함께 [[한국]] 고대사에 있어 최상위 예술품으로 손꼽히고 있다. 6세기 경 백제의 화려한 금 공예술을 보여주는 왕의 유물로, 그 화려함은 가히 으뜸이라 할 만하다. 이에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. [[파일:공주시 마스코트.png|width=400]] 현재 [[공주시]]의 마스코트인 고마(GOMA)곰이 차고 있는 허리띠가 이 무령왕 금제 관식의 문양을 따 만들어진 것이며 시내버스 디자인을 개정하면서 무령왕 금제 관식의 문양을 사용할 정도로 공주시 곳곳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